이 칼럼은 [국제신문 2014-06-18] CEO칼럼 입니다.
촌놈 용돈 2만원 /박수관
고독사·빈곤·질병…노인문제 심각한 사회
전통 효사상 부활은 국가 정책보다 우수한 노인복지 정책이다
-와이씨텍 회장 박수관-
오래전부터 우리 국민은 효를 사람 사는 첫 번째 덕목으로 삼아왔고 이를 실천하며 사는 사람을 사회적 귀감으로 여겨왔다. 부모를 정성을 다해 섬기는 사람은 남을 배려하고 존중하며, 웃어른을 공경할 줄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진정한 효를 실천하는 모습을 찾아보기가 매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오히려 시골이나 외딴집에 부모를 유기하는 현대판 고려장, 병든 부모를 방치하고, 폭언과 폭행을 하고, 부모를 서로 모시지 않으려고 자식들끼리 다투고, 재산권과 부모 모시는 문제로 자식이 이혼을 하는 등 비상식적인 일들이 일상화하고 있다. 얼마 전 우리 지역에서도 홀몸노인이 죽은 지 5년이 지나 백골상태로 발견돼 큰 충격을 준 일이 있다. 공동체의식이 약화된 현대사회에서 가족과 이웃의 단절이 가져다준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법정스님이 생전에 '맑고 향기롭게 법회'에서 소개한 사례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효가 얼마나 추락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부인과 사별한 70살 노인이 혼자 아파트에서 3년간 살고 있는데 아들과 며느리가 보기 안됐으니까 아파트를 팔고 자기 집으로 들어오시면 잘 모시겠다고 몇 달 동안 사정을 해서 그 할아버지는 모든 것을 정리하고 지참금을 가지고 아들 집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그렇게 한동안 지내던 어느 날 안방에 들어가 무얼 찾다가 며느리가 작성한 가계부가 펼쳐져 있어 보게 되었는데 거기에는 '촌놈 용돈 2만 원'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아 집을 나왔다고 한다." 자기 시아버지에게 주는 용돈을 '촌놈 용돈' 이라고 한 것이다.
요즘 세상에는 부모가 자식으로부터 효도를 받으려면 재산이 있어야 하고, 부모가 물려줄 재산이 줄어드는 만큼 자식들이 찾아오는 횟수도 줄어들기 때문에 재산을 한 번에 물려주지 않고 조금씩 나눠 주는 것이 자식으로부터 대접을 받을 수 있는 길이라는 말이 회자된다. 애완동물은 온갖 정성을 다해 보살피면서 자신을 위해 평생을 희생한 부모에 대해서는 자식으로서 최소한의 도리마저 포기한 사례들은 우리의 슬픈 자화상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사회에서 효가 추락하게 된 것은 산업화와 도시화에 따른 물질문명의 지배와 입시위주 교육으로 인한 인성교육의 부재가 주요 원인이다. 산업화와 도시화는 핵가족화를 가속화시켰고, 이로 인해 가족체계 내에서 예절과 어른을 공경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지게 된 것이다. 사회적으로는 전통적으로 누려왔던 노인의 역할이나 대우가 급속히 약화됨에 따라 노인들의 사회적 심리적 고립과 소외감은 더욱 커지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2017년이면 전체인구 중 노인 비중이 14%가 되는 고령사회로 진입한다고 한다. 고령화 현상은 선후진국을 막론하고 중요한 국가적 과제로 부각하고 있다. 노인들은 경제적 어려움, 질병, 사회적 역할 단절 등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외로움이다. "노년의 고독감은 빈곤과 질병보다도 더 큰 재난"이라고 한 테레사 수녀의 말처럼 노인에게 외로움은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고령화와 그에 따른 과도한 복지비 지출로 인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 중 하나로 주요 국가에서 시도하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 사회에서 약화되고 있는 효를 기초로 가족 돌봄 전통을 되살리려는 것이다. 싱가포르나 미국의 일부 주에서는 부모 부양에 관한 법률을 시행하고 있다. 중국에서도 2013년 노인권익보장법을 제정, 노인과 분가해 사는 가족 구성원은 자주 집을 찾아가거나 노인의 안부를 물어야 하고, 노동자가 떨어져 사는 부모를 만나려고 휴가를 신청하면 기업은 이를 받아주도록 하고 있다. 가족만큼 노인을 잘 돌볼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전통적 효 사상이 고령화 사회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시사해 주고 있다.
사회적 현상은 전염성이 강해 주변에서 하는 행동은 이웃에게 쉽게 전파된다. 효 실천의 생활화를 위한 국가적 사회적 노력이 절실히 필요한 이유이다. 효 사상의 부활을 통해 노인들의 외로움을 달래주고 삶에 대한 용기와 희망을 갖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를 위해 정부와 정치권은 효 실천에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제도와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무엇보다 어려서부터 효의 중요성을 깨닫고 실천할 수 있도록 가정과 학교에서 인성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국민들도 효도라는 것은 특별한 사람이 행하는 특별한 일이 아니라 자주 대화를 하고, 자주 찾아뵙고, 함께 나들이하는 등 일상생활에서 부모를 생각하고 함께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으면 얼마든지 실천할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이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범국가적 효 사상 회복노력을 통해 며느리가 가계부에 '촌놈 용돈'이 아닌 '아버님 용돈'이라고 기록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