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스님!
법정스님께서 우리 곁을 떠나신지 어느 덧 100일이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그동안 저는 단 하루도 스님을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스님이 그리워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린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으며, 때로는 스님의 향기를 가까이서 느끼고 주위를 둘러보기도 했고, 심지어 스님께서 전화를 하지 않으셨을까 하는 생각에 휴대폰으로 손이 가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더욱 스님 생각이 나고 그리움에 목이 메이는 것은 스님은 비록 세상을 떠나셨으나 저의 가슴 속에 변함없이 살아 계시기 때문일 것입니다.
제가 스님을 처음 뵌 것은 24년 전 송광사 불일암에서 입니다.
당시 스님께서는 ‘무소유’, 민주화 운동에의 참여 등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지셨던 때였습니다.
스님은 무소유 사상과 이를 모범적으로 실천하는 생활을 통해 끝없는 물욕의 수렁에서 허덕이는 우매한 중생들에게 어떻게 사는 것이 참 삶인가를 일깨워 주시는 큰 어른이셨기에 저는 스님 뵙기를 간절히 소망했고, 그러한 염원이 이루어져 스님과의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스님을 처음 뵈었을 때 스님이 너무도 엄하게 느껴져 말 한마디 꺼내기조차 어렵고 조심스러웠으나, 손수 내어주신 차를 한 잔, 두 잔 나누는 사이 스님은 정말 따뜻하고 인자하시다는 것을 저절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날 스님과의 첫 만남은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저의 삶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을 뿐 아니라 세상을 맑고 향기롭게 살아가는 지혜를 얻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또한 그 날의 인연이 계기가 되어 스님과 함께 우리의 마음, 세상, 자연을 맑고 향기롭게 가꾸기 위한 맑고 향기롭게 부산모임을 열어, 지금껏 스님 가까이에서 살아온 더없이 큰 영광을 누렸습니다.
스님! 저에게 있어 스님은 참 스승이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저를 만날 때마다 항상 아름다운 삶의 지혜를 일깨워 주셨지요.
또한 스님께서는 마음밭을 일구는 지혜와 청빈의 삶을 몸소 보여주신 이 시대의 정신적 스승이었을 뿐 아니라 제 삶의 정신적 지주이셨습니다.
지나친 소유는 어리석은 집착에 불과하며, 분수에 넘치는 것을 바라지 않고 비워냄이야말로 행복에 이르는 길이라고 가르쳐 주셨기에 이를 실천하려고 노력해 보았으나 정말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도 스님의 가르침을 내려놓지 않고 평생토록 실천하는데 소홀함이 없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스님 !
스님께서는 저에게 있어 아버지와 같은 분이셨습니다. 제가 힘들어 할 때 늘 인자한 미소와 격려로 용기와 희망을 주셨고, 제가 잘못할 경우 엄하게 나무라며 잘못을 깨우쳐 주셨지요.
스님께서 세상을 떠나시기 전날 병실에서 저의 손을 오랫동안 꼭 잡고 계셨지요.
그 때는 스님의 손 힘이 강하고 따뜻하다고 느꼈는데 이제와 생각하니 마치 어린 아이를 두고 먼 길 떠나는 아버지와 같은 마음으로, 미덥지 못한 제가 안쓰럽고 불안한 마음에 차마 손을 놓지 못하셨구나 하는 생각을 불현듯 합니다.
제 삶의 진정한 스승이요, 저를 거듭 태어나게 하신 부모와 같은 스님께서 세상을 떠나시고 나니 내딛는 걸음마다 헛헛하고, 남은 제 삶의 의미마저 흔들리는 것 같습니다.
비록 스님의 육신은 제 곁을 떠나셨지만 스님의 가르침과 삶은 제 영혼에 고스란히 새겨져 저를 올바른 길로 인도해 주실 것이기에 용기를 내어 한 걸음 또 한 걸음 내딛으며 잘 살아가겠습니다.
스님의 가르침을 실천함에 있어 비록 부족하더라도 게으름이 없도록 매순간 깨어서 정진하겠습니다.
이 생에서 얻은 스님과의 귀한 인연에 엎드려 감사 올립니다.
다음 생에서도 스님의 제자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스님, 평안하십시오! 그리고 이 나라의 큰 빛으로 다시 돌아오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