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적 법정스님 '무소유' 정신 좇는 '맑고 향기롭게' 박수관 부산 본부장
"'절판 유언' 무엇보다 실천을 강조하신 듯"

▲ 박수관 '맑고 향기롭게' 이사 겸 부산본부장이 부산본부 사무실에서 법정 스님의 무소유 정신을 설명하고 있다. 곽재훈 기자 kwakjh@kookje.co.kr
지난 11일 법정 스님이 입적했다는 소식을 듣고 곧바로 스님의 무소유 정신을 실천하는 단체인 '맑고 향기롭게'의 박수관(61) 부산본부장에게 전화를 했다. 전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목소리는 신경을 바짝 집중해도 알아듣기 힘들 만큼 작고 힘이 없었다. "지난 9일 삼성서울병원에 스님 문병을 다녀왔는데 그날 밤 자는 도중에 갑자기 온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오늘은 너무 심해 병원에서 링거를 맞던 중 소식을 들었다. 임종을 곁에서 지키지 못해 죄송하다"고 말했다. 스님의 입적을 예감했던 것일까.
스님의 초재를 끝내고 돌아온 박 본부장을 18일 부산롯데호텔 옆 정산빌딩 9층에 위치한 부산본부에서 만났다. 박 본부장은 먼저 책 한 권을 건넸다. 스님의 입적 후 나온 책이라고 한다. 책 제목은 '한 사람은 모두를, 모두는 한 사람을'이었다. 그래서 이야기의 실마리를 스님의 유언 중 저서의 절판 부분에서 꺼냈다. 무소유를 주장하던 스님이 절판 유언을 남기는 바람에 사람들이 스님의 책을 서로 사려고 나서는 등 오히려 소유욕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 아니냐고. 박 본부장은 "아마 당신의 책조차도 불필요한 것이므로 남기지 말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책에 쓰인 글보다는 실천을 강조하려는 우회적 표현이 아니겠느냐"고 설명했다.
박 본부장은 법정스님의 유발상좌(머리를 기른 속가의 상좌)다. 법명도 받았다. "1985년께 불일암에서 스님을 처음 친견한 이후 스님과의 인연이 쌓였고, 스님도 저를 눈여겨 보신 것 같다. 어느 날 저를 부르시더니 제자가 되길 권했고 법명도 밝고 참되게 살라는 뜻으로 명진(明眞)이라고 지어주셨다"고 회상했다. 박 본부장은 특히 법정 스님의 무소유 삶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
"불일암에서도 그렇고 불일암을 떠나 강원도 산골에 거처하실 때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곳에서 호롱불 3개로 생활하셨습니다. 큰 스님들은 보통 상좌들이 시봉을 하는데 스님은 직접 밥하고 빨래를 하셨고 상좌들에게는 시봉 드는 시간에 정진하라고 하실 정도였죠. 큰 스님, 작은 스님이 따로 있냐며 큰 스님이라는 표현도 쓰지 말라 하셨어요."
'무소유' 삶을 일반인이 쉽게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물었다.
박 본부장은 "저는 무소유를 간소한 삶, 간편한 삶이라고 이해하면서 생활하고 있다"면서 "예를 들자면 백화점에서 1+1 행사를 하면 고객들은 덤으로 하나 더 얻는다는 생각에 사게 된다. 그런데 막상 집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물건인 경우가 많다. 그런 부분부터 불필요한 것이라고 깨닫게 되면 스님이 말씀하신 무소유의 삶을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단법인 맑고 향기롭게는 1994년 창설됐다. 박 본부장은 창설 멤버로 현재 이사이며 부산본부장도 17년째 맡고 있다. 이사진에는 길상사 주지 덕현스님, 한나라당 이계진 의원, 김형균 도서출판 동쪽나라 대표 등이 포함돼 있다. 본부는 부산 대구 창원 등 전국에 8곳. 부산본부(www.clean94.or.kr/busan/)는 정기적으로 소식지를 보내는 회원 4000여 명과 자원봉사자 150명, 운영위원 44명이 활동한다. 주요 사업으로는 주 3회 홀몸노인들을 방문해 목욕 봉사와 함께 밑반찬과 쌀, 의류 등을 지원한다. 고아원 양로원도 지원하며 연말이나 명절에는 성품을 전달한다. 재원은 회원·운영위원들의 후원금과 박 본부장의 지원금(연간 1억여 원)이다.
"정신적 지주였던 스님이 입적하셔서 공허하기 그지 없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스님의 유지에 흠이 되지 않아야겠다는 사명감이 더욱 강하게 듭니다. 스님 입적 후 시민들의 가입 문의전화가 쏟아졌습니다. 우리 사회가 희망적이라는 이야기죠. 마음과 세상과 자연을 맑고 향기롭게 하자는 스님의 취지를 더욱 잘 실천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박 본부장은 부산의 대표적 중견기업인이다. 신발제조업체인 ㈜영창신기술과 조선기자재업체인 ㈜동원중공업의 대표이사로 있다. 베트남 공장 등의 인연으로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에 이어 올 1월부터 베트남 명예영사를 맡고 있고, 2012년 고향인 전남 여수에서 열리는 2012 여수세계박람회 준비위원장이기도 하다.
김찬석 기자 chansk@kookje.co.kr